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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방관입니다.
십 수 년을 소방에 몸담고 있으면서 점점 회의감을 느껴가고 있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요?
처음 소방에 임용되었을 때는 ‘소방’ 이라는 단어의 자긍심과 ‘119대원’이라는 희열까지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들을 보면 왜 ‘소방’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후회도 됩니다.
일하고 싶은 직장,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장이란 그저 문구로만 존재하는 허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예전 ‘화재와의 전쟁’이라는 정책으로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소방은 얼마나 변화가 있었을까요?
현재진행형인 “소방행정종합평가” “국민생명보호정책”
언제부터인가 소방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등수와 점수로 평가되어지고 있습니다.
시작은 “더 나은 대국민서비스 창출”, “질적 성장”이 토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선에서의 소방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크게는 본부와 작게는 소방서별 무제한 경쟁이 시작되면서 짜 맞추기 식 점수획득에 사활을 걸게 되었습니다.
평가기준도 애매모호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예산도 편성 되지 않은 기초소방시설 보급을 위해 구걸을 시키면서 엄정한 공직기강을 주장하고, 각종 현장 활동에서 활동하다가 다쳐 공상을 당해도 감점요소가 되어 욕을 먹어야 하는 이 비참한 평가제가 바로 우리 소방조직의 현실입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슬픕니다.
어이가 없다는 것은 일선서의 서장님이나 본부의 높으신 분들의 개인적 치적을 쌓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점수를 쌓기 위해 직원들을 닦달하고, 감점요인이 생기면 노발대발......
필요도 없는 자격증을 따라, 교육을 해라, 홍보활동을 해라...........
이루 말로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요구사항이 많습니다.
그래서 1등하면 자신의 능력으로 알고 자랑스러워하시고 행복해하시는 높으신 분들.
두고두고 “내가 있을 때 이 만큼 했어”라고 평생을 자랑스러워 하실 건가요?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누가 알아줄까요?
1등하면 어떻고 꼴찌하면 어떻습니까? 모두가 1등만을 원하면 꼴찌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건가요?
그리고 슬픕니다.
슬프다는 것은 모든 것이 점수화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존중 받아야하고 소중하게 인식되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수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습니다.
다쳐도 안 되고, 나이가 많거나 몸이 안 좋아도 응급구조사는 구급대원을 해야만 합니다. 응급구조사가 구급대원을 안하면 감점입니다.
사고를 내서도 안 되고 실수를 해서도 안 됩니다. 급기야 화재현장에서 사망자가 생겨도 감점이 됩니다. 소방차가 고장이 나서 공장에 입고가 되어도 감점입니다. 객관적 형평성도 결여되고 말도 안 되는 평가기준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점수획득을 위해서라면 필요도 없는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고, 어떠한 경우든 절대로 감점요인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윗분들의 입맛에 맞추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평가 기준에 맞추어 직장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사고(思考)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생각을 하고 행동해야 하는 건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일을 할 때뿐입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고 평가입니까?
억누르는 정책이 아니라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정책은 정녕 없을까요?
일선서장님들과 높으신 분들 중에 정책과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직원들의 열악한 복지와 근무환경에 관심을 가져줄 분은 안계신가요?
소위 현장 활동 조직의 브레인 집단이라 일컬어지는 소방본부가 일선 소방관의 권리를 대변해 주고,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이나 사기를 북돋을 수 있는 시책을 다뤄 주기는커녕, 스스로 권리를 찾겠다는 하위직 소방관을 문제아 취급하면서 일반직 예산담당자의 눈치나 살피며 그저 때가 되면 승진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집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부에 연연하다보면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이에게 비굴할 수 밖에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리에 연연하고 높은 곳만 바라보면서 얼마나 더 비굴한 모습을 보이시렵니까?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짜증나는 직장생활이 아니라 보람을 느끼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희망이 있는 조직으로 언젠가는 바뀔 거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먼 미래가 아니길 기대해 봅니다.
소방가족 여러분 모두들 행복하시길 마음속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