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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속초소방서 노학센터 소속 소방교 김성현 선생님께 늦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작성자
김시연
등록일
2026-02-10
조회수
15
내용
저의 아버지는 평소 술을 한 잔도 드시지 못하셨으나, B형 간염 보균자로 간암과 간경화 투병 중이셨습니다. 직장 문제로 늘 아버지 곁에 함께하지 못했고, 투병 기간이 길어지고 병세가 악화될수록 우울증과 병마의 고통으로 수면제에 의존하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쓰러지기 약 두 달 전부터는 밤마다 통증이 더욱 심해져, 아버지 스스로 119에 신고하시는 날들이 잦아졌습니다.그러던 중 2025년 2월 20일, 아버지께서 새벽에 1차로 119에 신고하셨고, 이어 아침에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2차로 119에 신고를 하셨습니다. 20년 동안 병간호와 더불어, 과거 저 또한 가족력으로 암 투병을 겪은 이후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를 모든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책임지는 일은 어느새 저를 지치게 하고 있었습니다. 투병 중인 아버지임을 알면서도 잦은 신고로 인해 마치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복되는 출동이 국비 낭비로 비칠까 하는 마음에 창피함과 죄송함이 늘 먼저 앞섰습니다. 그런데 그날, 김성현 선생님께서 직접 보호자인 저에게 전화를 주셔서 보호자님, 지금 아버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면 즉시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판단에 따라 이송된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산소포화가 많이 떨어져서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응급실에서 아버지를 확인하신 응급과장 교수님께서는 10분만 늦었어도 돌아가셨을 상황이라며, 당장 연명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연명치료가 시작되자마자 아버지는 소생실로 옮겨졌고, 의사 선생님들과 10명이 넘는 여러명의 간호사 선생님들의 손길 속에서 처치가 이어졌습니다. 그 긴 시간의 처음부터 장시간을 함께해 주신 분이 바로 김성현 선생님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처치를 받는 내내, 세상에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를 혹여 잃게 될까 두려워 하염없이 울고 있는 제 곁을 지켜주시며, 경험상 지금 당장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상황은 아니니 너무 울지 말라고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말씀 하나하나가 당시 제게는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그렇게 오랜 시간 아버지의 처치를 함께 지켜봐 주셨고, 2월 24일에는 제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헤아려 전화 대신 조심스러운 문자로
“보호자님 안녕하세요. 아버님을 이송해 드리면서 강릉에서 뵈었던 구급대원입니다. 아버님은 어떠신가요?”
라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이후 통화에서도 그 누구보다 진심 어린 걱정과 격려의 말씀을 전해 주신 분이셨습니다.아버지는 이송 당시 폐혈증으로 사망 직전의 상태였고, 여러 차례 위독한 고비를 맞이한 끝에 같은 해 7월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그 당시 김성현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와 진심 어린 격려에 바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하루아침에 와상 환자가 된 아버지를 간병하며 매일을 고비처럼 보내야 했고, 여러 차례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에서 생활을 함께하다가 결국 혼자 상주가 되어 장례까지 치르다 보니 도저히 그럴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2월 20일, 1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김성현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은 여전히 선연하여 이렇게 늦은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소방관이라는 직업은 그 어떤 직업보다 힘들고 고단하면서도 위대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일로만 대하는 직업이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내어주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김성현 선생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모습은 그 믿음을 더욱 깊게 해주었습니다. 김성현선생님께서 맡은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보여주신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태도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이 작은 글이 충분한 힘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이었던 저희 부녀의 곁을 가족 이상으로 지켜주셨던 김성현 선생님의 공로가 강원특별자치도 소방본부 본부장님께
꼭 전달되어, 진급과 포상에 기여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현재 의료 공백으로 갈 곳을 찾지 못한 환자들이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당시에도 한 차례 강릉아산병원 수용이 거부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김성현 선생님께서 이 환자는 지금 당장 아산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병원측에 강력하고단호한 한마디를 해주신 덕분에, 아버지와 약 5개월이라는 시간을 더 함께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은 제 삶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뜻깊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저에게 우리나라의 진정한 위인들은 소방관들이며, 그 안에 김성현 선생님이라는 최고의 영웅이 계십니다. 그런 김성현 선생님께 진심으로 백배치사 합니다.
“보호자님 안녕하세요. 아버님을 이송해 드리면서 강릉에서 뵈었던 구급대원입니다. 아버님은 어떠신가요?”
라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이후 통화에서도 그 누구보다 진심 어린 걱정과 격려의 말씀을 전해 주신 분이셨습니다.아버지는 이송 당시 폐혈증으로 사망 직전의 상태였고, 여러 차례 위독한 고비를 맞이한 끝에 같은 해 7월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그 당시 김성현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와 진심 어린 격려에 바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하루아침에 와상 환자가 된 아버지를 간병하며 매일을 고비처럼 보내야 했고, 여러 차례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에서 생활을 함께하다가 결국 혼자 상주가 되어 장례까지 치르다 보니 도저히 그럴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2월 20일, 1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김성현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은 여전히 선연하여 이렇게 늦은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소방관이라는 직업은 그 어떤 직업보다 힘들고 고단하면서도 위대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일로만 대하는 직업이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내어주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김성현 선생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모습은 그 믿음을 더욱 깊게 해주었습니다. 김성현선생님께서 맡은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보여주신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태도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이 작은 글이 충분한 힘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이었던 저희 부녀의 곁을 가족 이상으로 지켜주셨던 김성현 선생님의 공로가 강원특별자치도 소방본부 본부장님께
꼭 전달되어, 진급과 포상에 기여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현재 의료 공백으로 갈 곳을 찾지 못한 환자들이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당시에도 한 차례 강릉아산병원 수용이 거부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김성현 선생님께서 이 환자는 지금 당장 아산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병원측에 강력하고단호한 한마디를 해주신 덕분에, 아버지와 약 5개월이라는 시간을 더 함께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은 제 삶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뜻깊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저에게 우리나라의 진정한 위인들은 소방관들이며, 그 안에 김성현 선생님이라는 최고의 영웅이 계십니다. 그런 김성현 선생님께 진심으로 백배치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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