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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도 고향 가는 추석이 다 있네?
“언제 출발할까?”
“새벽에 출발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니야. 길이 좀 막히더라도 지금 출발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선물은?”
“형님, 작은댁, 조카들... 다 된 거 같아요”
남편의 고향은 충청도다.
‘민족대이동’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명절엔 이동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언젠가 명절엔 열두 시간 걸려 고향에 도착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고향’이라는 두 글자가 갖는 의미는 이런 고생쯤 감내하기에 충분하다.
Supermoon을 볼 수 있다는 올해 추석 명절, 우리는 남편의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났다.
남편의 고향으로 향하는 차에 오르면서 얼마만의 고향방문인지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그런데 기억이 가물가물 통 셈을 할 수 없다. 10년? 15년?
이젠 아득한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고향방문’.
결혼 후 몇 번은 운 좋게 고향에 갈 수 있었다.
소방직의 특성상 줄곧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했었고 불과 몇 년 전부터 지금의 3교대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근무형태가 어떠하더라도 명절에 남편과 동행하는 고향방문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명절에 남편 없이 남편의 일가친척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은 참으로 어색하고 고된 일과였다. 그러나 점차 세월을 더해 갈수록 남편이 빠진 고향방문은 자연스런 현상이 되었으며 일가친척들은 남편보다 나와 더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일전 명절엔 뱃속에 있었는데 다음 명절엔 기어 다니며 또 아장 아장 걷기까지 하는 조카의 모습을 남편이 아닌 나 혼자 경험하고 있었다. 또한 남편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친척들에게 소방관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또한 오늘과 같은 명절에도 비상근무로 인해 국민들이 편안한 명절을 보낼 수 있는 것이라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곤 했다. 친척 어르신들은 우리집안에 소방관이 있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움의 고개를 끄덕여 주셨고 고생 많다며 위로해 주셨다. 아직 초등학생인 조카들은 한두 번 본적 있는 소방관 당숙의 명절근무라는 말만 듣고도 화염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경외심의 눈빛을 보이곤 한다.
차례를 지낸 후 작은어머니께서 싸주시는 각종 전과 떡을 가지고 와 퇴근 후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남편 앞에 펼쳐 놓는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바로 ‘고향’이다. 찹쌀화전을 한 입 베어 문 남편의 얼굴에 화전 속 꽃보다 더 환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며 남편의 고향에 남편 대신 다녀온 내가 오히려 미안해진다. 작은아버님 고추 농사가 잘되어 행복해 하시는 모습과 사촌동생 결혼 날짜 잡은 일, 큰조카가 경시대회 나가 수상한 이야기 등등 고향의 이야기를 나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남편은 마치 그 자리에 자신이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헤벌쭉 입을 벌리고 웃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명절이 다가오면 은근히 내가 고향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이다. 그리고 직접 고향에 전화를 하여 나를 보내지 않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남편은 가을의 스산함과 외로움에 유독 약하다.
진정한 ‘추남’이다.
그간 남편은 가족행사에, 나와 아이들을 참석시킴으로 인해 본분을 다해왔다.
그러나 시간을 더해 갈수록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명절에 자신은 가장 외로운 존재로 방치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 역시 가족과 남편 사이에서 도리를 우선 하다 보니 남편이 다음 순서가 되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팠으나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문제의 해답을 남편이 갈음한 것이다.
이십 여 년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도리의 순서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직접 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소방관의 명절 휴무는 ‘복불복(福不福)’이 아니다.
‘지금껏 나의 남편에게는 그 복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복이 있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논리대로라면 내가 복을 가질 때 그 복을 갖기 못해 힘들어하는 타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소방관의 명절 근무는 그렇지 않다. 내가 근무함으로 인해 행복하고 편안한 다수가 생긴다.
처음 얼마간 ‘왜 이렇게 근무 복이 없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더해 갈수록 나의 생각이 얼마나 안이한 것인가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명절 전 친분이 있는 몇 몇 분께 안부전화를 했었다.
모두 명절 전 후로 당직근무를 하거나 명절에도 관내를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그 분들의 음성에서는 명절근무로 인해 부당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며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을 자신이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의식의 소방관과 소방의 리더들이 우리나라를 더 나은 방향, 더 좋은 나라로 끌어올린다.
고향에 도착했다는 남편의 SNS에 친분 있는 동료 소방관께서 ‘소방관도 고향 가는 추석이 다 있네? 신기하네’ 라는 답글을 보내왔다. 그 답글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 짧은 한 줄의 문구 속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안다. 그리고 Supermoon을 바라보며 이번 추석에 고향을 찾지 못한 소방관들은 다음 설 명절에 고향 방문 할 수 있는 근무 조 되기를 기원했다.
추석 당일 남편의 교대시간을 두 시간 남겨둔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남편은 잠깐의 휴식도 없이 바로 출근을 서둘렀다.
“좀 쉬었다 출근 하세요”
“아니야.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교대해 주어야지”